"백신 못 믿어?"…끝장 토론 들어간 프랑스
2016.01.19 SBS뉴스
“아이에게 백신을 꼭 접종해야 하나?” 누구에게는 쓸 데 없고, 어떤 이들에게는 심각한 질문이다. 백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백신은 약한 세균으로 병을 가볍게 앓고 나면 면역이 생긴다는 원리에 기반한다. 백신 덕분에 인류가 전염병에서 해방됐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백신이 부작용을 낳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세계에서 백신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토론을 예고했다.
● 프랑스에서 백신 불신 증가세
프랑스인의 30%는 백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프랑스 언론이 보도했다.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9개월 미만 영아의 백신 접종률이 5% 떨어졌다. 신종 인플루엔자 접종도 6년 새 17%가 줄었다. 9~14세 여성이 맞는 자궁경부암 접종률은 17%에 불과하다.
불신은 2009년 발병한 신종 인플루엔자에서 시작됐다. 백신에 든 알루미늄 성분이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우려가 나왔다. 백신 반대 단체는 “알루미늄은 신경 독성 물질이라 위험하다”며, “알루미늄이 포함돼 있지 않은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B형 간염 백신이 신경 근육 관련 질병을 유발한다는 의구심도 나돌고 있다.
● 백신 과잉 접종?
앙리 주와이유 전 몽펠리에 의대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 백신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잉 접종이라는 의구심이다. 2009년 프랑스 보건장관이 TV에 나와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주사를 맞으며 접종을 권유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정부는 백신 접종으로 병의 확산을 막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문한 백신은 9천 4백만 개였는데, 6백만 개만 접종이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백신 제조회사에 4천8백만 유로(현재 환율로 633억 원)를 배상했다. 국가가 제조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많은 양의 백신을 주문했고, 위험을 과장했다는 의심을 샀다.
백신은 의무?
프랑스는 백신 종류에 따라 ‘의무’와 ‘권고’로 나눈다. 법적으로 반드시 접종해야 하는 의무 백신은 3가지다. 디프테리아, 파상풍, 척수성 소아마비. 최근에 두 자녀에게 의무 백신을 맞히지 않은 부모가 징역 2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만큼 강하게 규제한다.
소아과 전문의 막틴은 “해당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없다”며, “위험한 상황이 오기 전에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백신 의무화 반대 단체는 “천연두 예방접종을 중단했다고 천연두가 재발한 것은 아니”라며, “사라지거나 드물게 발생하는 질병 때문에 백신을 꼭 접종해야 하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 프랑스, 백신 대토론 착수
의구심이 커지자 프랑스 보건부는 올 한해 동안 백신에 대한 대 토론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3월에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5월부터는 전문가가 참여해 시민 제안과 의견을 검토할 계획이다.
토론을 기반으로 연말까지 결론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정부는 토론을 통해 백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의무’ 규정을 유지할지, ‘권고’로 변경할지는 토론이 끝나봐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선택' 접종은 불가능?…갈라진 유럽
백신 논란이 있다면, 접종 ‘의무’를 ‘권고’로 수정해 부모가 결정하게 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프랑스 보건당국은 의무 규정을 폐지하면 접종률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도 프랑스인의 속성상 강제 규정을 없애면 접종을 소홀히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접종 의무냐 권고냐를 놓고 유럽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프랑스와 폴란드, 그리스는 백신 접종 의무가 있다. 영국, 독일, 스페인은 강제성이 없다. 같은 질병, 같은 예방법, 같은 의학 상식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나라마다 판단이 다른 셈이다. 백신 논쟁이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