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결정한 폐구균 백신접종, 부작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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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배정 → 대상선정 → 계약체결 '속전속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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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닥터스뉴스
올해 국회에서 예산 책정이 갑작스럽게 결정되면서 소아대상 국가필수예방접종(NIP) 항목이 된 폐렴구균 백신이 1일부터 일제히 무료접종에 들어갔다. 올 1월 1일 예산책정이 결정된지 5개월여만에 백신선정과 백신조달 계약, 백신물량 확보, 백신접종행위료 결정, 접종까지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정부는 폐렴구균 백신 NIP 예산이 책정되는 줄 모르고 있다가 올초 예산이 책정되자 뒤늦게 접종 준비에 들어가 실질적인 접종은 빨라야 올 하반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속전속결 끝에 5개월여만에 접종 시행에 성공(?)했지만 보건의료 관계자들은 이번 폐렴구균 백신 NIP 대상 결정과정과 시행 준비과정 등에서 적지않은 문제들이 노출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도, 주무 부처도 배제된 예방접종 결정
우선 '폐렴구균 백신을 국가 예산으로 무료화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당혹스러운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백신선정 과정이 뜬금없다는 표현이 나올만큼 갑작스럽게 결정됐기 때문이다.
국회가 올 1월 1일 소아폐렴구균 예방접종을 NIP 대상 백신으로 선정하고 무료접종 전환에 따라 586억원을 예산을 배정하자 가장 당황한 쪽은 정부였다. 애초 정부는 폐렴구균 백신 접종 예산을 정부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는 국회가 올초 예산을 책정하자 부랴부랴 위원회를 구성해 세부사업 일정을 잡았을 정도로 이번 예산책정 과정에서 배제됐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모르게 예산이 책정된 이유는 여권 유력 정치인이 예산 심의 막판에 갑자스럽게 소위 '쪽지 예산'으로 백신접종 예산을 들이밀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예산책정에 당황한 것은 의료계와 해당 제약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소청과 의사들은 예방의학적으로 인플루엔자와 A형 간염 백신의 NIP 포함이 시급했다고 보고 이를 요구하고 있던터에 폐렴구균 백신이 NIP 대상이 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렴구균 백신을 생산하는 화이자와 GSK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NIP 포함 결정에 올 1월초 비상회의를 개최하고 대책마련에 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폐렴구균 NIP 결정은 의료전문가나 정부의 주무 부처가 아닌 정치가가 보건의학적인 판단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주요 보건예방정책을 결정했다는 비판에서 두고두고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측은 예산이 책정되고 난후 "설문조사에서 국민들이 폐렴구균 백신을 NIP 우선선정 백신으로 꼽았다"고 밝혔지만 보건의학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의료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 설문조사로 결정했다는 문제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예산배정부터 접종까지 속전속결 혼란 불가피
쪽지 예산에 의한 갑작스러운 예산책정은 접종시행 과정에 악영향을 미쳤다. 질병관리본부는 상반기 안에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한다는 목표를 잡고 5개월 안에 백신선정과 조달계약, 접종행위료 등을 마무리졌다. 백신선정은 지난 2월 단 한번 열린 예방접종전문위원회 회의에서 화이자의 '프리베나13'과 GSK의 '신플로릭스'를 선정했다.
두 제약사 모두 타사 백신에 비해 자사 백신의 우월성 등을 제시했지만 백신을 비교·검토할만한 시간이 애초부터 충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위원회는 충분한 자료와 검증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두 백신의 효능 차이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동일한 백신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면서도 두 백신의 가격은 다르게 책정해 계약을 체결했다.
그나마 조달청과 제약·도매사간 계약이 유찰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두 번째 공개입찰에서 입찰에 성공해 접종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
5월부터 접종에 들어갔지만 국가가 지원하는 586억원을 제외한 지자체 몫의 586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제대로 편성되지 않아 관련 지자체 예산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지자체들은 5월부터 폐렴구균 백신 접종을 하지만 예산은 지난해 잡아뒀던 12가지 NIP 접종백신 예산에서 집행하고 있다.
한해 12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폐렴구균 백신이 고가라 폐렴구균 접종을 감안하지 않은 기존 NIP 백신 예산은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은 일단 폐렴구균 백신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하겠다는 계획으로 그때까지 버텨보자는 생각이다.
지자체들과 교감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편성된 예산책정이 지자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 자칫 예산 문제로 원활한 NIP 접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혼란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별 아닌 백신별 계약 첫 적용...원칙깼나?
질병관리본부가 NIP백신 계약을 맺는 원칙은 '동일질병에 대한 동일 백신가격 책정'이다. 현재 12가지 NIP 백식은 정부 조달청이 한 가지 가격으로 각 제약사들과 계약을 맺는다. 질병관리본부의 이런 원칙이 처음으로 폐렴구균 백신 계약과정에서 깨졌다.
조달청은 폐렴구균 예방백신 화이자의 프리베나13을 5만6840원에, 신플로릭스는 4만9000원에 각각 낙찰했다. 동일질병에 대한 동일 백신가격 원칙을 깬 것. 질병관리본부측 한 관계자는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프리베나13과 신플로릭스를 같은 가격으로 입찰할 경우 프리베나13의 입찰상황이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부득이 다른 가격을 책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교체접종이 권고되지 않는 백신 특성상 지난해 프리베나13을 접종받았을 경우 추가접종 역시 프리베나13을 맞아야 해 프리베나13의 충분한 확보를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역시 국회에서 갑작스럽게 폐렴구균 예방백신이 NIP로 들어오면서 물량확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한 질병관리본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다른 백신이 NIP에 추가될 경우에 '동일질병에 대한 동일 백신가격 책정'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 예외사항을 둘 것인가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측이 명확한 기준을 밝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폐렴구균 백신 NIP 선정 과정은 갑작스러운 대상 선정과 준비없는 사업추진, 속전속결 시행을 위한 원칙 무시 등으로 두고두고 보건의료계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