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13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연치유
꽃피고 흙 피고 몸도 피어납니다
»»김효진 (한의사)
봄이 되면 땅이 풀리고 새싹이 올라오는 앙증맞고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보실 수 있죠? 비 온 뒤 화창한 날이면 갑자기 온 세상에 푸른 물감이 풀린 듯 파리한 아지랑이가 느껴지는 때가 오고 몸이 갑자기 더운 온도를 감지합니다. 그런데 몸은 여기저기 쑤시기도 하고 괜히 여기저기 가려움이 느껴지면서 긁적이게 되기도 합니다.
원래 아지랑이는 스물스물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 몸도 똑같이 풀리는 중이라 가렵고 가벼운 통증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봐야 며칠 안 가서 몸이 가벼워지고 식욕이 왕성해지면서 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봄이면 도리어 식욕이 떨어지고 춘곤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안 그래도 늘 가려움과 전쟁 중인 아토피 아이들은 더욱 극심한 가려움을 호소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봄이라는 계절 변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봄에 느껴지는 여러 가지 변화의 증상 가운데 어떤 것이 병이고 어떤 것이 병이 아닌지, 봄에는 어떤 치료가 순리적인지를 알아볼까 합니다.
언젠가 피부에 관한 책을 쓰면서 “꽃 피고지고, 흙 피고지고”라는 제목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꽃이 피는 것만 보이겠지만 사실 그것은 흙이 피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계절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피고 지는 모습이고 우리 몸이 피고 지는 모습입니다.
무언가 오랫동안 움츠렸다가 펼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여기 저기 우수수 찌꺼기가 떨어지고, 펼쳐지느라 갈라지기도 하고 그러겠죠? 괜히 심심해서 한 번씩 움츠리고 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순환될 때마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성장기의 아이들이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 아이들은 묵은 살과 껍질을 떨궈 내면서 새 살과 피부를 만들어냅니다. 없던 성장통도 생깁니다. 피부에는 각질이 많아지고 때로는 갈라지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는 더 매끈해지고 더 빨리 살이 차오릅니다. 그 변화의 표시가 긁적이는 가려움이고 여기 저기 스물스물한 사소한 통증들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통증을 담들렸다고 하기도 합니다.
지금 없던 가려움이 생겼다고 해도, 괜히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고 해도 너무 단 기간에 병이라고 놀라지 말고 1주일만 변화를 살펴보세요. 설사를 하거나 배가 아프더라도 열이 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조금 기다려보세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몸이 겨울 때를 벗고 봄을 맞이하는 준비과정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고 진짜 병일 때는 1주일을 지켜봐도 호전되는 것이 보이지 않고 점점 심해질 겁니다. 또는 점차 기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식욕이 점점 더 나빠질 겁니다. 그럴 때는 의료기관을 찾아가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아토피 아이들이 많으니 특별히 한 가지 더 짚어보죠. 봄에는 우리 인간만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들도 깨어납니다. 그래서 봄에는 기력이 약하거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은 각종 세균성 질환에 걸리기 쉽습니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은 봄에 농가진이라는 2차 감염증을 앓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농가진은 깨어나는 우리 몸과 깨어나는 미생물들이 서로의 영역 확보를 위해 한바탕전쟁을 치르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나 자신의 힘을 더 강하게 발휘해야합니다.
몸으로 파고 들어오려는 병원균과 내 몸에서 떨쳐내려는 의지가 싸울 때 이기려면 당연히 밀어내는 힘이 더 강력하게 만들어야겠죠?
우리가 몸에서 무언가를 밀어내는 방식은 대소변과 땀입니다. 봄에 농가진이 발생하면 대소변에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확인한 다음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먼저 해결해야하고 문제가 없다면 땀내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땀내기는 각탕, 반신욕, 사우나 어떤 것도 다 좋습니다. 이렇게 밀어내는 방식에 전력투구를 해서 승리하게 되면 피부가 급속도로 호전을 보입니다. 그런데 농가진으로 열이 나고 힘이 빠져서 헥헥거릴때 병원을 가게 되면 고단위 항생제로 병원균을 죽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병원균을 상대하던 우리 몸의 유익균들도 항생제 때문에 함께 위축되고 사멸됩니다. 또한 해열제와 소염제를 많이 쓰기 때문에 몸 전체가 차갑게 가라앉습니다. 찌꺼기 배출의 현상으로써 설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열제와 항생제 때문에 몸이 차가워져서 설사를 하게 됩니다. 이런 역리(逆理)적인 치료는 계절은 봄인데 우리
몸은 겨울이 되라고 봄의 문턱에서 문지기가 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절의 기운과 반대로 가는 치료는 그 다음 계절도 온전히 맞이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더위에 헉헉거리며 진이 빠지고, 남들이 근력을 자랑하며 뛰어다닐 때에도 땀도 나지 않게 되면서 근육통에 시달리고 땀띠도 생기기 쉽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봄에 양생을 잘못하여 병이 계절을 따라 계속 이어져 가을 겨울의 해수, 천식까지 가게 되는 것을 온병이라고 합니다. 올 한 해의 건강이 봄부터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봄에는 봄에 맞게 털어내고 펼쳐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올해 큰 병 걸리지 않고 무탈히 지나가실 겁니다. 봄에는 꽃 피고 흙 피고 우리 몸도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