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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영화다시보기 > 샤이닝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16-12-30 15:25:05    조회: 4,299회    댓글: 0


 

<<< 영화다시보기 >>> 샤이닝

 

»»김진희 (꽃진이 / 편집위원)

 

감독 : 스텐리 큐브릭
출연 : 잭 니콜슨, 셀리 듀발
공포, 미스터리/ 영국/ 1980

 

  여름철이 되면 의례히 찾게 되는 것이 공포물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독 공포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특히 심야영화로 공포영화를 보고 극장 바깥으로 나왔을 때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새벽거리의 오싹함을 즐긴다. 공포물을 즐기는 이런 심리는 무엇일까? 긴장과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느낌은 피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일 텐데 그것을 되레 즐기는 데에는 피학적인 면도 있는 것일까?


  예전에 6살 된 조카를 데리고 비디오 대여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주온>이라는 영화 포스터가 그 곳에 붙어 있었는데 검은 눈자위만 있는 소년의 얼굴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포스터였다.

  언뜻 보기에도 섬뜩한 그 포스터를 가리키며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봐! 무섭지?" 

 

  조카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그냥 아이 얼굴이야. 거꾸로 붙어 있는 거야."


  나는 그 대답이 놀라왔다. 아이의 눈에는 정말 이 포스터가 무섭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그러한 설정을 이미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정해놓았기 때문인 것 아닐까. 아이들처럼 아무런 선입견이 없으면 무서움이란 것도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 같은 '무서움'의 재발견이었다. 재난을 당한다거나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등의 근본적인 무서움을 제외하고는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무서움은 그저 인간만이 즐기는 감각의 유희일지도 모르겠다.


  공포영화를 즐기다 보면 같은 장르의 영화일지라도 그저 같은 공포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들어진 섬세함과 내용에 따라 그 품격은 천차만별이다. 히치콕의 영화가 그랬고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이 그랬다. 소품과 음악. 이중적인 스토리와 반전,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우러진 <장화, 홍련>을 나는 수없이 돌려보았다. 볼 때마다 숨겨진 장치를 새로 발견하고 해석하며, 공포물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외로움을 읽어내고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식스센스>의 반전이나 <디 아더스>의 고전미도 좋아했지만 <장화, 홍련>은 고품격 공포영화의 세계로 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고품격 공포영화를 추천하라고 하면 반드시 첫 번째로 꼽는 영화가 바로 <샤이닝>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1980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클락 워크 오렌지>를 만든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이고 연기파 배우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뛰어난 구성과 연출을 보면서‘ 아! 스탠리 큐브릭은 천재야!'를 외치고, 연기를 보면서는“ 미친 잭 니콜슨!” 이란 말을 연신 내뱉게 될 만큼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배경부터도 멋지다. 한겨울이 되면 폭설로 고립되는 오버룩(Overlook) 호텔. 눈 때문에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이 호텔은 겨울 동안 문을 닫는다. 그래서 그 기간에 호텔에 머물며 설비를 관리해줄 관리인을 따로 채용한다. 관리인은 가족과 함께 들어와 저장해둔 음식을 먹으며 빈 객실의 보일러를 이따금씩 틀기만 하면 된다. 잭 니콜슨이 연기하는 잭 토렌스는 겨울 동안 호텔 관리인이 되어 돈도 벌고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소설도 쓰기로 한다. 아내 웬디와 아들 대니를 데리고 고립무원의 호텔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예전의 관리인이 자신의 두 딸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잭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잭의 아들 대니는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샤이닝' 능력이 있다. 대니는 오버룩 호텔에 오면서부터 이상한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그 안에 세워진 화려한 호텔이 배경이 다. 이 호텔이 지어진 미국의 땅은 본래 인디언의 것이고 백인들이 침략과 살육으로 땅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곳에 물질적이고 경박한 세계를 세웠다. 침략과 살육에서 출발한 그들의 문화와 정신을 영화는 호텔 곳곳에 배치된 인디언 문양의 소품들, 인디언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호텔의 역사 등을 통해 드러낸다. 또 한 명의 샤이닝 능력자로서 진실을 알아채는 사람도 흑인이다.


  이 영화는 가장의 인격이 붕괴됨으로써 미국이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해체되는 모습을 전면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그런데 그에 위협 당하는 아이의 옷에 미국의 상징인 미키마우스와 아폴로 우주선을 새긴 것이다. 위협받는 잭의 아내 역시 옷의 색상이 빨간색과 파란색이고 별이 새겨져있다. 언뜻 보면 성조기를 입고 있는 듯하다. 보면 볼수록 숨겨진 상징이 쏟아져 나오는 영화다. 한 조각씩 퍼즐 맞추기를 하듯 영화를 보노라면 한 편의 영화에 이토록 풍부한 함의를 심어놓을 수 있다는 데에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잭 니콜슨의 연기야 두 말 할 것 없이 명불허전이지만 아내 웬디 역을 맡은 셸리 듀발 역시 공포영화 맞춤 배우가 아닐까 할 정도로 캐릭터에 잘 들어맞았다. 그녀의 표정은 분장이 필요 없어 보일 정도로 공포영화 속 희생자의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감독은 설리 듀발에게 그런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녀를 몹시 괴롭혔다고 한다. 영화가 막바지에 접어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로 핏물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저 긴장감의 연속으로만 여기고 별 생각 없이 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붉은 물을 쏟아 부은 거라고 한다. 80년에 제작된 영화니 컴퓨터그래픽이 없었겠구나 싶으면서도 그 엄청난 양의 붉은 물이 실제 촬영장을 적셨을 거라 생각하니 매우 오싹한 장면이었다.


  공포영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좀비 영화도 있고 홀터가이스트와 엑소시즘 류도 있다. <불신지옥>처럼 한국식 정서를 담은 영화도 있고 <13일의 금요일>처럼 잔인한 공포를 다룬 영화도 있다. 폰이나 사탄의 인형, 가발, 요가학원처럼 소재를 이용하기도 하고 집과 이웃을 다루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와 사실감을 부여한 영화도 있다.


  공포영화에 있어 이처럼 어떤 '류'라는 것이 뻔히 나뉘어져 있다면 <샤이닝>은 좀 특별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옛 사건과 고립된 공간에서 분열하는 인간의 정신, 백인 문화에 대한 고발과 샤이닝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모두 다룬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도 아니고 심지어 단순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쓸데없이 복잡한 영화로 보이겠지만 그냥 넘겨버리기엔 아까운 수작이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검색 사이트에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중 하나로 <샤이닝>을 선정해 놓았다. 누가 선정했는지 몰라도 매우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이 여름 무서움을 유희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잘 만든 영화일 뿐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 잊지 못할 영화가 될 것이다. 

 

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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