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은 좋은 것이다 2
초보들이 열에 대처하는 실수
열이 이롭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 몸이 자기를 망칠 정도로 열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열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열이 나면 머리가 나빠진다거나 뇌세포가 죽는다거나 하는 이야기죠. 지금까지 글을 읽으면 알겠지만 이런 일은 없습니다. 그럼 아이의 열에 대처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엄마, 아빠의 공포심을 잠재우는 일입니다.”
38도만 돼도 해열제‘ 퍼’ 먹이고, 물로 닦고 응급실로 튀어가는 엄마, 아빠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오죽 하면 의사들이“ 해열제 쉽게 살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가정에서 이뤄지는 과잉의료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해열제를 먹인지 2시간도 안 됐는데 열이 안 내린다고 또 해열제를 주는 일, 해열제로 안 내린다고 해열좌약까지 넣는 일, 한 가지 약으로 안 듣는다고 2~3가지 해열제를 칵테일 하는 일 등 집에서 해열제를 잘못 사용하는 일은 굉장히 흔합니다.
이것은 자연치유를 어깨 너머로 배운 사람들도 흔히 범하는 실수입니다. 열 좀 난다고 관장기부터 들고 와서 관장하고, 안 하던 풍욕하고, 겨자찜질 하고, 따고 하는 일은 모두 필요 없는 일입니다.
39도 정도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열에 대한 대응의 기본입니다. 왜 냐하면 열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열제를 먹여도 1도 남짓 내려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열이 높을 때는 정상체온까지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다른 자연요법을 해도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억지로 정상체온에 맞추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것은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일입니다. 그냥 끝날 병을 괜히 이것저것 해서 크게 만드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권해지는 미지근한 물로 몸 닦기도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미지근한 물로 닦는 사람은 그나마 공부한 사람들이죠. 그냥 찬물로 막 닦아내거나 알코올을 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찬물이나 알코올로 닦는 사람은 석유 들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한여름에 창문 꼭꼭 닫고 보일러 끝까지 올리는 일입니다. 몸이 뜨거운데 찬물로 닦으면 피부가 수축하기 때문에 안에 있는 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겉에서는 열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져도 몸안의 열은 더욱더 올라가게 됩니다.
미지근한 물로 닦기는 그나마 부작용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미련한 일입니다. 이미 설명했듯이 몸에는 체온을 설정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40도로 설정되어있는데 아무리 열을 내리자고 미지근한 물로 닦고 난리쳐도 결국엔 40도 찍은 다음에 열이 내려갑니다.
창문 활짝 열어놓고 보일러 때는 격이죠. 보일러는 설정온도가 되어야 꺼지니까 결국 보일러는 계속 돌게 됩니다. 요즘 보일러 성능 좋아서 창문 열어놔도 설정온도 맞추더군요. 설정온도까지 올리기 위해 생체보일러가 계속 돌아야 되는 셈입니다. 보통 미지근한 물로 닦자마자 열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꽤 닦아야 열이 떨어집니다. 사실은 열이 날만큼 나서 알아서 열이 떨어진 건데, 물로 닦아서 그렇게 됐다고 믿는 미련한 상황인 것이죠.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열 나서 힘든데 쉽게 지치게 되고, 과열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과열에 대처하는 법
대표적인 생체과열반응이 열성경련입니다. 열성경련은 전체 아이의 4%에게 일어나는 흔한 증상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십년감수할만한 장면입니다. 이렇다보니 열이 나자마자 해열제를 먹이고 위에서 이야기한 각종 해열법을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해열을 위해 하는 행동이 열성경련을 줄인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열성경련이 있는 아이들에게‘ 과잉의료’를 해야할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다 과학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경련할 줄 뻔히 알면서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죠. 이때는 관장 한번 하고, 손발 따주는 정도에서 대처하면 됩니다. 관장하면 열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관장을 해열법으로 애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병을 구분하자면 관장해서 열이 떨어진 경우에는 체했던 겁니다. 체해서 난 열은 어디든 뚫어줘야 해결됩니다. 관장하고 손발 따면 기본적인 처치는 된다고 보면 됩니다.
단순히 감기로 생긴 열이라도 몸의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열 때문에 장에 수분이 빠지면 장의 운동성이 제한되거나 일시적으로 폐색되는 등 경련을 일으킬 만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 대변의 수분도 같이 빠지기 때문에 변이 염소똥처럼 동글동글해지면서 일시적 변비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비가 생기면 이것이 또다른 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열 때문에 생긴 각종 노폐물이 밖으로 잘 빠져나가게 해줘야 2차적인 부작용을 덜 겪게 됩니다. 한 보름만 쓰레기 안 치워가 보세요. 동네가 어떻게 되나? 이럴 때 관장으로 장에 수분을 공급하 고 막힌 변을 빼면 과열반응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열이 있을 때 관장을 자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속 강조하듯이 39도 이하에서 사용되는 모든 해열법은 과잉의료입니다. 그것이 자연요법으로 불리든, 서양요법이든, 한방이든 말이죠. 체한 것이 확실하면 관장을 1차 처치로 해도 됩니다. 아침에는 콧물도, 기침도 없이 멀쩡했는데 저녁에 불덩이처럼 열이 오른다면 보통은 체한 겁니다. 이럴 때는 관장이 필요합니다. 체한 경우가 아니라면 열이 난 상태에서 2~3일 이상 변을 보지 않을 때에 한해 관장을 하면 됩니다.
열이 높고 기침과 가래가 심하게 있는 경우에는 겨자찜질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경험들이 기관지염, 폐렴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겨자찜질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본인에게 시도해본 후에 아기에게 해야 합니다. 관장 한번 스스로 안 해보고, 겨자찜질 한번 안 해보고 최초의 실습대상이 아기인 사람이 있습니다. 한번도 수술 안 해본 사람에게 우리 아기 수술 맡기는 식입니다. 이야기 안 해도 당연히 알겠지만, 아기는 님의 첫 실습대상자로 되기에는 너무 소중합니다. 따는 것도, 관장도, 겨자찜질도 평상시에 해보세요. 아기 아플 때 우왕좌왕 하면서 배우려고 하지 말고 평소에 연습해놓으세요.
그래도 뭔가 불안하면 각탕을 해열법으로 사용합니다. 땀이 나면 열이 떨어집니다. 각탕은 땀을 내서 열을 내리는 방법입니다. 가장 부작용이 적지만 엄청 많이 체해서 급하게 난 열에 각탕을 사용했을 때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탕을 해열법으로 사용할 경우는 38~39도의 열일 때입니다. 40도 이상의 열에서는 초보자가 사용할 방법으로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1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