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HOME < 계간지 < 사는 이야기

 

11호< 영화다시보기 > 연인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17-01-02 15:48:10    조회: 8,266회    댓글: 0

<<< 영화다시보기 >>> 연인
 

»»김진희 (편집위원) 

 

감독 : 장 자크 아노

출연 : 제인 마치(소녀), 양가휘(중국인 남자)

드라마, 멜로/프랑스, 영국/

2014.02.20 재개봉, 1992.06.20 개봉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더운 날씨, 끈적이는 습도에 가까이있는 가족들마저도 싫어질 만큼 인도차이나의 날씨는 힘겨웠다. 그리고 소녀의 가족은 가난했다. 프랑스인인 이들 가족은 돈을 벌기 위해 프랑스 지배령인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죽어버렸고 어머니의 투자는 실패했다. 사람도 풍경도 낯선 땅에서 백인이라는 우월감은 지키고 싶었으나 물질적 기반이 없는 그것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인도차이나에 살고 있는 백인들 사회에서 소녀의 가족은 수치였다. 그들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 가구까지 내다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가난 속에 소녀가 있었다.

 

  엄마는 무기력했고 오빠는 마약에 중독되어 사납게 폭력을 휘둘렀다. 소녀는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준 기숙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낡고 초라한 옷, 남성용 페도라, 닳아빠진 하이힐이 그녀의 차림새였다.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소녀의 복잡한 상황을 나타내는 듯 했다. 아시아에 살고 있는 백인, 인종에 대한 우월감과 가난에 대한 두려움, 불안한 미래와 지친 가족, 여자이고 싶지만 덜 자랐고 아이로 남기에는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학교로 향하는 배에서 소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매우 부자였지만 중국인이었다. 낯선 곳에서 자존심만은 지켜보려고 애쓰는 가난한 백인 소녀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많은 중국 남자의 만남은 소녀의 차림새만큼이나 어색하고 기묘했다. 병약해

보이고 예민한 중국남자와 낯선 남자랑 자는 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소녀는 시장통의 집에서 관계를 갖는다. 뭐 저런 집이 있을까 싶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음과 그림자가 여과없이 비치는 그 집. 그들의 관계는 질척이는 시장통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다.

 

  중국남자는 소녀를 사랑하게 됐다. 소녀는 그의 돈이 좋아서 그를 만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관계는 소녀의 가족에게까지 알려졌고 그들은 남자를 만나러 왔다. 남자는 소녀의 가족과 예의바른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무례하고 뻔뻔했다. 그저 그의 돈에 넋을 잃고 황홀해할 뿐 그에게 조금의 예의도 갖추지 않을 뿐더러 소녀와의 관계에 대해 추궁조차 하지 않았다. 백인인 그들은 남자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그의 돈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그를 좋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갈등할 여지도 없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소녀의 가족은 본국(프랑스)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비를 남자에게 요구했다. 소녀는 남자에게 자신을 다른 창녀들과 똑같이 대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소녀와 결혼하고 싶다며 아버지를 설득해 보기도 했고 소녀가 자신을 만나는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도 했다. 어린소녀는 위악을 부리는 데 남자는 순수한 사랑을 바라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또다시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다.

 

  마침내 남자는 집안에서 정해놓은 결혼을 하게 되고 소녀의 가족은 남자의 돈으로 프랑스행 배를 타게 됐다. 그리고 소녀는 그 배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와 아이의 중간쯤에서 처음으로 여자 행세를 해낸 소녀가 아직 자신 안에 남아있는 아이로 돌아가 소리 내어 울듯이 그렇게 울고 말았다. 그 일을 해내느라 힘들었다는 듯이. 남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처음으로 꺼내본 듯이. 아무리 사랑이 강렬해도 그 사랑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들 속에서 소녀는 차라리 위악을 선택했으리라.

 

  올 여름, 호된 더위를 겪는 중이었다. 끈적이는 습도와 더운 날씨에 나른해지면 생각나는 영화가 몇 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연인’이다. 1992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을텐데 어떻게 이 영화를 봤는지 언제 어디서 처음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예닐곱번은 본 것 같다. 처음엔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주인공 소녀의 울음소리가 애잔하기도 했고 그 의미를 생각하느라 자꾸 다시 보게 됐다. 내 나이도 소녀에서 여자가 되어감에 따라 이 영화가 새롭게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라는 영화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이고 원작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라는 소설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을 영화 속 소녀처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보냈고 프랑스로 돌아가 작가가 됐다. 소설 속에서나 영화에서도 이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 속 제인 마치가 연기하는 소녀는 작가의 실제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실화라는 점, 원작소설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더욱 섬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에 매력을 더해주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11호에 실린 글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안예모 사이트맵

안예모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