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10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연치유
내 친구 미생물과 일촌 맺기
»»김효진 (한의사)
우리 사는 사회를 둘러보면 할 일은 많지만 우리가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습니다. 심각성은 다 알지만 환경문제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노력해도 금방 그 성과를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회문제 역시 노력은 하지만 성과를 얻기는 힘든 일이죠.
하지만 먹거리 문제는 개인으로 노력하면 금방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건강의 시작은 부엌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육아를 위한 자연요법 공부가 제대로 된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건강요리 전문가 되기겠죠? 제가 생각하는 건강요리 전문가는 발효식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이룬 여러 가지 혁명 중 가장 큰 혁명은 화식입니다. 원시적으로 생식만 먹어야했다면 인간 역시 동물의 한 종류로 남겨졌을 겁니다. 왜냐하면 움직임에 필요한 최소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종일 사냥하고 그걸 먹는 데만 모든 시간을 투자했을 테니까요. 통 곡식을 씹어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코끼리나 소처럼 하루 종일 씹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시간여유라는 것이 있을 수 없죠. 화식을 하면서 필요한 에너지의 흡수에 아주 많은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여유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놀이와 문화가 시작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지금의 존재를 만든 것이죠. 먹는 것의 변화는 이렇게 인간 역사를 시작하게 하는 혁명이었습니다.
그 먹는 일에서의 혁명 중 가장 빛나는 혁명적 학술적 성과는 발효식입니다. 발효식을 통해서 인간은 타고난 것보다 더 많은 미생물 친구들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미생물을 적대시하지 않고 친구로 사귄다면 그보다 더 면역적으로 큰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내병과 외병
유사 이래 인간의 병은 내병과 외병 두 가지였습니다. 내병은 자기 스스로 대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으로 조절불균형 및 신경성 질환까지,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대사성 질환들이 이런 것입니다. 외병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감기부터 크고 작은 염증성 질환들이 이것입니다.
발효식은 외병의 완벽한 예방책이며 내병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 치료약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알면 알수록 미생물과의 공생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을 적대시하면 그만큼 환자가 되기 쉬운 환경에 처합니다.
소독개념이 생기고 위생을 논하면서 무언가 개념이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소독과 위생은 병원균 즉 아직 친구가 되지 못한 적대적 미생물에 대한 방어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모든 미생물을 병원균으로 인식하는 개념들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역병이 돌고 수많은 사람이 죽으면서 그리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역사적으로 힘들고 슬펐던 사건들이었지만 그 이후 인식 변화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갔습니다. 친구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친구가 되어야하고 더 많은 미생물들을 병원균에서 친구로 만들어야 해결될 문제였는데, 마치 영원한 적인 것처럼 인간들은 미생물 척결을 위한 무기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입니다. 화공약품들이 개발되고 약과 백신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면서 인간은 미생물계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인간에게 무심했던 미생물들조차 인간을 적대시하게 된 것이죠.
그들은 세대교번이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숫적 팽창도 엄청나게 빠릅니다. 유전자의 적응과 변화가 인간과 비교하면 빛처럼 빨리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내성이라는 유전자 변화를 이루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각종 화공약품과 약물 백신에 대항해서 인간의 소독에 대항해서 점점 괴물스럽게 강해집니다.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고 싶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생물들과 친구를 맺는 것입니다. 미생물들과의 친구 맺기, 일촌 만들기는 발효식품을 먹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이미 현재 나의 우군인 미생물들을 강화함으로써 그들의 친구가 또 내 친구가 되고 그러는 인맥 쌓기와 같습니다. 가까운 미생물계는 신토불이 개념의 시작이고 제철식품 먹기의 원리입니다. 시공간적으로 가장 친근한 미생물을 접하려면 신토불이의 제철 식품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들로 만들어 진 발효식품은 완벽한 약선음식입니다.
요리에서의 발효는 시간과 공간을 붙잡아두는 마법이기도 합니다.
양기가 부족한 겨울에 양기 가득한 여름 먹거리를 발효식품으로 만들어서 먹는다면 그건 보양식이죠. 더위와 땀으로 체력이 떨어질 때 더위를 진정시키고 힘을 길러주는 겨울철 먹거리를 발효식으로 만든 다면 약이죠. 겨울 김장김치, 동치미 국물을 잘 저장해서 여름에 국수 다시물로 활용한 것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리와 발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건강의 근원적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특히 사라져가는 슬로우푸드 만들어 먹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집집마다 이렇게 하면 한의원은 문닫아야할 겁니다. 의료기관이라고는 한의원 밖에 없고 먹거리라고는 전통식 밖에 없고 화공약품도 안쓰던 시절, 과거에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이 죽었나 하는 것은 먹거리의 절대적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먹거리의 절대적 과잉상태를 누리며 삽니다. 그러니 다이어트가 핫 이슈가 되고 각종 연구의 목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부디 많은 분들이 다시 장독을 사랑하고, 집집마다 다른 된장을 담고, 자연의 힘으로 요리하는 슬로우푸드를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간식으로까지 슬로우푸드를 먹고 입맛이 고급화되어 싸구려 정크푸드는 싫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미생물 친구들이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병원균이라는 존재가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더 이상 일반 한의원을 할 수가 없어서 정신과 의사로 변신하거나 발효요리연구가로 살게 되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