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는 단 한 마디로 우리 모두의 마음을 표현한다.
“메르스 미워!”
근래 재미가 들린 블록놀이방이 메르스로 인해 한동안 휴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놔도 오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한 선택이리라. 병원부터 시장통까지 난리라는 표현이 이보다 정확할 수 없다. 이 난리에 처음부터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못한 세월호 때 우왕좌왕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들 대다수는 윗사람들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행정안전부라는 지난 정부의 부처 이름을 말놀이하듯이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간판 교체비로만 엄청난 돈을 쓰더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거창하게 국민안전처라는 전무후무한 부처를 만들어놓더니 또 이 모양이다(그 과정에서 행정안전부의 이름은 다시 참여정부 때 이름인 행정자치부로 바뀌었다. 이 정부 들어 이 부서는 간판만 세 번 갈았다. 간판 가는 돈은 당연히 세금이다). 지금 상황에서 정부와 보건당국이 잘했다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그 비판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건정책과 감염병을 책임지는 조직인 질병관리본부 등이 얼마나 허술하게 돌아가는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역학조사관은 겨우 34명이란다. 그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 32명은 공중보건의이다. 역학조사관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것을 조사하는 사람이다. 공중보건의는 군대를 가는 대신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들이다. 역학조사관은 뛰어난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이들은 3년 병역을 이행하면 또다시 다른 사람으로 메워진다. 예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내게 이렇게 고백했다.
“사실 전공분야지만 질병관리본부에 들어오기 전에는 감염병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감염병 분야라는 것이 굉장히 좁은 전공영역이기 때문에 실제 전문가는 굉장히 적다.”
소아과를 전공하고 예방접종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질병관리본부에 와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단 이야기였다. 지금 이 의사는 질병관리본부에 없다. 왜냐하면 병역이 끝났기 때문이다. 전문성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항상 새로 들어온 이등병과 일등병들에게 감염병 전투를 맡기는 꼴이다. 이런 구조는 곧 능력 없음과 이해관계로 얼룩지게 된다.
질병관리본부는 정부부처 중에서도 굉장히 작은 조직이고, 그 조직은 소수의 의사결정으로 돌아간다. 이번에 새로 무료로 도입된 일본뇌염 백신의 경우에도 이런 민관유착의 고리가 보인다. 예방접종 심의위원장은 이 백신을 본인이 실험하고, 본인이 도입을 결정하는 망치 소리를 울렸다.
이런 장면이 계속 연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시민의 참여가 통제되기 때문이다. 시민의 참여가 통제되는 상황은 곧바로 투명성 부족과 직결된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투명성 부족이 핵심 범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또 능력 없음과 이해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시민단체 등록을 신청했지만 거부됐다. 하지만 이번 호에 실린 법원의 판결문에서도 우리의 정당성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보건분야의 시민단체 등록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악명’이 높다. 어떤 단체 대표는 내게 보건분야쪽은 등록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우니, 여성가족부나 이런 쪽으로 신청해보라는 조언까지 했을 정도이다.
다른 분야처럼 시민단체 등록에 대해 단순히 행정절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거부하고 본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폐쇄성은 행정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고등법원에 항소한 보건당국의 행태에도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메르스 사태로 바빠지자, 우리에게 항소기일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업무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소가 뒷발로 코 긁을 일이다. 그들의 업무 부담이 커진 이유는 ‘정당한 이유도 없이’ 항소했기 때문이지 않는가(며칠 지나 항소기일 연기는 우리와 합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합의 안 해도 상관없다고 전해왔다. 이 대책 안 서는 무능함이란!)?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위원장이 백신 실험하고 위원장이 허가하는 코미디를 계속 틀고 싶은 것일까? 일본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중단한 수은 들어간 일본뇌염 백신을 계속 접종하고 있는 무능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일까? 백신 맞고 대여섯 시간 있다가 사망해도 백신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들의 민낯을 가리고 싶어서일까?
메르스 혼란은 거의 밀실에서 이루어지다시피하는 보건정책에서 기인했다. 보건당국은 이제라도 가리기 급급한, 더 이상 가릴 수도 없는 무능이 썩기 전에 폐쇄성을 버려야 한다. ‘업무부담’이 많은 항소를 포기하는 것도 그 일 중 하나이다.
덧붙이는 글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일시 중단한다는 공고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메르스 때문에 인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벌써 이 공고문이 붙은 지 꽤 된 것 같다. 수천 명 이상을 죽일 수 있다는 그 전염병들이 다시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런 결정을 한 것일까? 한두 가지 접종을 중단한 것도 아니고 모든 예방접종을 중단한다는 공고문이다.
디프테리아가 돌면 어쩌려고? 소아마비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 오래 중단해서 아이들이 그 사이에 그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 여름에 모기들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일본뇌염 백신은 지금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수두 때문에 아이들이 ‘곰보’가 되면 어쩌려고! 수두 백신 맞고 그나마 ‘덜’ 아프게 겪어야 하는 것 아닌가! 홍역이 돌아다니던 디즈니랜드에 구경 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며칠이라도 늦게 맞으면 큰일 날 것처럼 전화해댈 때는 언제던가? 이런 주먹구구와 무 능을 가리기 위해 우리를 거부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