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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은 계속된 실패의 역사

작성자: 안예모님    작성일시: 작성일2016-12-28 10:49:53    조회: 2,298회    댓글: 0

이 글은 계간 "부모가 최고의 의사" 1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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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방접종은 계속된 실패의 역사


  인간이 백신과 비슷한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약 2,5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430년에 그리스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가 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록을 보면‘ 전염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만이 같은 병에 걸린 환자를 간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백신을 실제로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 당시에 이미 한번 질병에 걸렸던 사람은 다시는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천연두 접종시술은 기원전 1500년경, 아유르베다(인도 전통의학)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힌두의사로 알려진 다완타리가 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기 중국의 기록을 보면 천연두를 앓았던 사람으로부터 얻은 수포나 농, 딱지를 분말로 만든 후 다른 사람의 코나 피부를 통해 주입해 면역을 얻도록 하는 ‘종두’라는 방법을 이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유럽에까지 전해졌는데 덴마크(1673년), 프랑스(1712년), 독일(1724년), 이탈리아(1754년), 영국 (1714년), 터키(1755년), 미국(1721년) 등에서 천연두 접종을 했다는 역사기록이 남아있다. 초기에 사용했던 천연두 백신은 독성이 강해 멀쩡하던 사람이 감염되는 위험성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그 위험성으로 인해 1840년 의회에서 법으로 천연두 접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 천연두 백신을 대신한 것이 우두백신이었다.

  우두백신을 개발한 에드워드 제너라는 사람은 시골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그 동네에는“ 우두에 감염됐던 사람은 일생동안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제너는 1976년 한 농부에게서 우두농을 얻어 8세 소년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한다. 6주가 흐른 뒤에 천연두농을 그 소년에게 다시 접종했는데 소년에게서 천연두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1798년 ‘우두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연구’라는 소책자를 발표했다. 이때부터 의료산업계는 많은 사람에게 우두를 접종하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0년도 채 안 돼 백신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1803년에는 런던에 우두접종 보급을 위한 왕립제너협회가 설립되었으며, 우두접종은 천연두접종을 대신하게 되었다. 1840년(제너가 실험을 한 지 44년 후)영국 의회는 천연두 접종을 금지하고, 아동에게 무료로 우두접종을 실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우두백신은 성공했을까? 영국은 1853년 예방접종 의무법을 제정하였고 1867년에는 새로운 예방접종법을 통과시켜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이렇게 법적으로 강력하게 예방접종사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1870~1872년 사이
영국의 기록 역사상 최악의 천연두가 발생하여 44,840명이 사망했다. 왕실자문기관인 추밀원은 사망자 중 97.5%가 예방접종을 받았거나 이전에 천연두를 앓았던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추밀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1. 예방접종이 도입된 뒤 오히려 천연두로 인한 사망률이 최고로 높아졌다.


      2. 천연두 환자 중 약 90%는 예방접종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1872년 예방접종의무법을 통과시켰으나 천연두가 계속해서 발생하여 1885년에는 7년마다 재접종을 하도록 하는 또 다른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과 2,500만 명 이상이 예방접종을 받고 1892년 재접종까지 받게 되었다. 하지만 1872년에는 156,175명의 천연두 환자가 발생하여 38,979명이 사망하였고 1893년에는 41,898명의 환자 발생에 11,852명이 사망했다. 이에 5년마다 재접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으나 1898~1908년 사이 171,611명의 환자 발생에 47,919명이 사망하였다. 치사율은 거의 30%에 육박했다.
  이탈리아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예방접종을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로 1885년 이전의 20년간 98.5%의 비율로 모든 국민이 예방접종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접종이 발명되기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천연두가 만연하여 천연두로 인한 사망자는 1887년 16,249명, 1888년 18,110명 1889년 13,413명이 사망했다.
  필리핀에서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예방접종을 강제로 시행했는데 1918~1919년 사이 격심하게 천연두가 창궐하여 147,187명의 환자가 발생해 63,973명이 사망했다. 인도의 경우 영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영국의 예방접종의무법이 적용되었지만, 1929년 국제연맹의 보건기구는 인도를 일러“ 천연두 발생의 최대 중심지”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경우 MMR백신(홍역, 볼거리, 풍진 혼합백신)이 무균성 뇌막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MMR백신의 접종을 중지시킨바 있고, 백일해 백신의 경우 대규모 사망사고로 인해 오키야마현의 의사들이 예방접종을 집단적으로 거부해 백일해 예방접종을 중단시킨 적이 있었다.
  스웨덴에서도 1979년 무용성과 위험성 때문에 백일해 예방접종을 중단하였는데 스웨덴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유아사망률(1,000명 당 6명)이 낮다. 이탈리아에서는 백일해 예방접종을 중단했었고,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1962년 중단
했다.
  미국에서는 1961년 이래 발생한 거의 모든 소아마비 사례에 있어서 소아마비 생백신이 그 원인으로 보고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노르웨이에서는 1979년 소아마비 생백신의 사용을 중단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2004년에야 이 백신의 접종을 중단했다.
  미국에서는 1998년에 승인한 유전자조작 로타바이러스 생백신이 최소 1명 이상의 아기가 사망하고, 99명의 유아에게 장중첩증을 일으켜서 접종 중단됐다. 외과수술 등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장중첩증은 치명적인 질환이다. 얼마전 출시된 자궁경부암 백신은 그 효과의 유효성 논란이 일자, 슬며시 새로운 백신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렇듯 백신의 역사는 이 순간에도 출시와 접종중단이 반복되는‘ 임상실험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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